[조선후기] 조선후기 공론정치
- 최초 등록일
- 2001.12.08
- 최종 저작일
- 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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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본 문
①공론정치의 형성
②공론정치의 확대
③공론정치의 활성화
Ⅲ. 맺음말
본문내용
②公論政治의 확대
언관과 낭관들이 공론 수용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면서 그 이면에서는 점차 공론 형성층이 형성·확대되고 있었다. 공론의 형성과 수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므로 수용기구의 정비는 공론 형성층의 형성에 밀접히 연결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공론의 형성과 수용이 원활하지 않았으므로 특정 인물이나 부서가 공론을 담당하였다. 당시에 공론을 담당하는 부서를 "公論所在"라 지칭하였는데 이는 공론의 수용 기관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공론 형성 기관이라는 의미까지를 포괄하였다. 즉 왕, 대신, 언관이 공론을 담당하였다는 의미는 대신이 공론을 수용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이들이 구체적인 공론 형성층임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서 합의된 의견은 곧 공론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공론의 바탕이 되는 공론 형성층이 구체화되지 않은 데서 기이하였다. 이념적으로는 모든 민은 공론의 형성층이었고 민심이 공론이었지만, 이들의 의사 표출과 정치의 수렴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론이 갖는 의미는 지극히 제한되어, 재상들의 정책 결정이나 언론기관의 탄핵에 명분을 부여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언권이 강화되고 낭관권이 형성되어 공론 수용 기능을 활발히 하게 되면서 구체적으로 공론 형성층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들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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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異敦,〈16세기 공론정치의 형성과정〉,《國史館論總》34, 國史編纂委員會, 1992
薛錫圭, 〈16∼18세기의 儒疏와 공론정치〉,《慶北大 博士學位論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