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과 대원군

등록일 2001.12.06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1.운현궁의 규모와 크기
2.운현궁의유래
3.운현궁과 대원군

본문내용

왕족이었던 대원군은 서슬이 시퍼런 세도가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아주 철저한 위장술을 썼다. 즉, 하층민(노비출신이나 거렁뱅이 등의 사회 최하층들)과 어울리며 세도가들이 넘어갈 때가 까지 몇 년간이나 거의 미친 사람행세를 했던 것이다. 세도가 집의 초상집을 최하층 패거리와 몰려다니며 술을 얻어먹고, 아무데서나 쓰려져 자고... 급기야 세도가들이 넘어가니, 그들은 대원군에게 "상가 집의 개" 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부르기에 이른 것이다. 세도가들이 넘어간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때를 기다려 오던 중 세도정권 붕괴 바로 1년전에 대원군이 전율을 금치 못했던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진주로부터 시작된 민중항쟁의 전국확산이었다. 민중세력의 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대원군은 민중세력과 타협 없이는 민중세력의지지 없이는 진정으로 그가 꿈꾸던 조선왕실의 권위회복도 왕권강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로부터 1년, 철종의 사망은 드디어 대원군에게 기회가 온 것이었다. 철종이 병약해 오래 살지 못함을 직감한 그는 왕족으로서 궁중의 최고 어른(대왕, 대비마마 등)들을 설득, 마침내 자기 아들인 12세 고종을 왕위에 앉히는데 성공한다. 철종이 너무 일찍 사망하자 당황한 세도가들은 또 다른 허수아비 왕족을 물색하던 중 대원군의 아들이 왕위에 내정된 것을 알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원군을 거의 실성한 사람으로 믿어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얼마든지 고종을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종이 12세로 즉위하자마자 대원군은 그 동안 오매불망 꿈꾸어 왔던 대대적인 개혁작업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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