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시대에 따른 부산지명 변천사
- 최초 등록일
- 2001.12.04
- 최종 저작일
- 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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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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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부산이란 이름의 유래
삼한(三韓), 가야(伽倻), 신라(新羅) 시대
통일신라(統一新羅), 고려시대(高麗時代)
조선시대(朝鮮時代), 현대(現代)
본문내용
부산(富山 또는 釜山)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그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기록상으로 반영되는 것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이다. 즉 <세종실록지리지>,<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보면 처음으로 부산의 이름이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부산포(富山浦)'라고 나온다.
부산포의 부(富)자가 가마솥을 의미하는 부(釜)자의 부산포로 바뀐 것은 대체로 15세기 전후로 생각된다.
즉 1480년(성종 11년)에 편찬, 그후 여러 번 증보된 <동국여지승람> 산천조(山川條)를 보면 '부산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釜形)과 같아서 이렇게 이름하였는데 그 밑이 곧 부산포이다.' 라고 하여 비로소 부산(釜山) 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후 여러 기록은 모두 이것을 본따 부산(釜山)이라고 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 산이 가마꼴(釜形)과 같아 부산이라 했다는 가마꼴 모양의 산은 어떤 산을 말하는 것인가.
1643년(인조 21년) 일본에 건너간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從事官)인 신유(申儒)가 쓴 <해사록> 등부산시(登釜山詩)에 '산 모양이 도도록하여 가마와 같고 성문이 해수에 임하여 열려있다.' 라는 귀절이 나온다.
이때의 부산진성(釜山鎭城)은 오늘날 좌천동(佐川洞) 북쪽 즉 금성중고등학교 뒤의 증산(甑山)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지금의 정공단(鄭公壇) 자리에 성문이 있었고 그 바로 아래가 바다로 되어 있었으므로 위에서 말한 시에 '산모양이 도도록하여 가마와 같다.' 라고 한 산은 바로 증산(甑山)임이 틀림없다. 또 이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지금으로부터 약 180년 전에 우리나라 사람이 그려놓은 부산포왜관도(釜山浦倭館圖)에 증산을 점초(占抄)하여 부산고기(府山古基)라고 기록해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더욱 잘 알 수 있다.
그럼 부산은 언제부터 부산이라고 불리고, 각 시대에 따른 부산의 이름은 무엇이였을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