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대를 통한 천인의 신분변동

등록일 2001.11.29 MS 워드 (doc) | 4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제1절. 보충군의 설치
제2절. 보충대와 천인의 신분변동
제3절. 조선후기 보충대

본문내용

제2장 보충대를 통한 천인의 신분변동

조선 전기의 신분구조와 지배층의 성격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사회신분을 양반, 중인, 평민, 천인으로 구분하는 양반제설 이고, 다른 하나는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하는 양천제설 이다. 특히 성종대에 대소인원의 비첩 소생만이 보충대에 입속하여 종량되었던 사실이 양반제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1절. 보충군의 설치 (p.40)
2절. 보충대와 천인의 신분변동 (p.55)
3절. 조선후기의 보충대 (p.66) 에 관해 설명하려고 한다.

제1절. 보충군의 설치

조선 초기 신분구조를 통해 사회성격을 이해하고자 할 때 다음 두가지 견해를 접하게 된다.
하나는 사분법의 양반제설 이고 다른 하나는 이분법의 양천제설 이다. 양반제설은 양반을 신분으로 규정한 반면 양천제설은 양반을 단지 양인신분의 상위계층으로만 인정한다. 특히 양천제설의 견해는 당시 국가가 군역과 부세를 기본 의무로 하는 다수의 양인을 확보하기 위해 고려 말 한때 사민화 되었던 천인들을 종양하는 양인확대정책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조선왕조의 개창으로부터 보충군이 설치되기 이전까지의 사회정책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토지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노비문제이다. 이 시기의 토지문제는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는 등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으나 태종 15년(1415) 보충군이 설치될 때까지 몇 번의 치폐를 거듭하였다. 노비문제의 발단은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난으로 공사전적이 유실된 결과 다수의 유망노비가 발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문세가의 토지와 인구집중에 따른 양인의 사민화 현상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선왕조가 추진한 양인확대정책이 구귀족의 재정적 기반을 붕괴시킴으로써 신.구정치세력이 상호 갈등관계에 있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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