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도성과 중국 도성의 차이점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1.11.21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우리나라 도성과 중국 도성의 차이점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도성의 정의
우리나라 도성
중국의 도성
우리나라의 도성과 중국의 도성 차이점

본문내용

도성의 정의
-도성은 왕이 평시 거처하는 궁성을 포함하여 한 국가 권력의 상징인 왕이 평시 거주하는 행정의 중심지에 내곽(內廓)인 궁성(宮城)과 외곽(外廓)인 나성(羅城)을 갖춘 형태를 말한다.

우리나라 도성
삼국시대
도성자체는 대개 큰 강을 옆에 끼고 도시를 조성화되 강가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서 성곽을 구축하였다. 도시 중심부 시가지에 격자형의 도로를 설치하여 네모 반듯한 거주 구역을 만드는 것도 고대 도시의 특징이다.
- 안학궁 : 평지의 궁궐과 대성산의 산성이 하나의 틀을 이루었다.
남북 직선축을 중심으로 중요 전각이 일직선상에 배치되고 나머지 건물도 직선축에 맞추어 좌우 대칭으로 구성
- 장안성 : 예전처럼 평상시의 도성과 산성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평지를 갖춘 외성과 산성의 지세를 이용한 중성, 내성등을 서로 연결시킨 방식이 채용되어 성곽 구성에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 도성과 공통되는 방리제 실시 가능성이 있다
-풍납토성 : 규모가 비교적 웅대하여 주위가 4km, 남북 약 3km, 동서 약 1km의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동쪽 성벽에는 몇 군데 성문터가 남아 있으나 한강에 면한 서벽은 1925년의 큰 홍수 때에 대부분 물에 떠내려가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토성의 동북쪽 귀퉁이와 동쪽 부분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데 현존 길이는 북벽이 약 300m, 동벽이 1,500m, 남벽이 200m 가량 된다. 위치로 보아 백제 초기의 도읍인 하남 위례성이며 주변의 주거지가 분포했다고 견해가 있다.
- 경주 : 도시전체가 네모 반듯하게 조성되지는 않았지만 도시 내부를 구성하는 거주 구역에서 중국의 도성제도를 모방한 방리제를 실시
통일신라시대
기본 틀은 바뀌지 않았으나 전제왕권을 바탕으로 경주를 장대하게 꾸미는 작업을 추진했다. 도성이 확대되고, 궁궐이 신축되었으며, 인공미와 자연미가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 발해 : 왕국 초기의 발해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산성에 의지한 생활을 하엿지만 곧 중국 당나라 제도를 모방한 도성을 건설하였다. 오히려 당나라보다 더 철저한 중국식 도성계획원칙을 가진 중국식 건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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