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관광자원론

등록일 2001.11.21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

본문내용

제주시
제주시는 원래 탐라국 시조의 개국 영지이며 제주 행정구역의 핵심도시이다. 탐라국은 삼국 시대에 신라 및 백제에 入朝하여 국호 및 벼슬을 받았고, 고려 태조 21년(938)에 고려에 속하게 되었다.
제주시 이도 1동에는 삼성혈이 있다. 삼성혈은 남문 밖 송림에 있는 3개의 구멍으로 모홍혈이라고 한다. 사적 제 134호인 이곳은 제주도 원주민 발생지로, 전설에 의하면 탐라국의 시조 고을나·양을나·부을나의 3신인이 솟아 났다고 한다. 소규모의 穴들이 평지에 각각 몇 미터의 品자 형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 잔디로 덮여 있어 본래의 모습을 잘 알 수는 없다.
삼성혈은 조선시대 중종 21년(1526)에 목사 이수동이 석단을 쌓고 穴 북쪽에 홍문과 혈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혈제를 지내게 함으로써 성역화 되었다. 속종 24년(1698)에 혈 동쪽에 삼을나묘(지금의 삼성전)를, 순조 27년(1827)에 전사청을, 헌종 15년(1849)에 숭보당을 세웠다. 그 밖에 가까운 곳에 석비가 있으며, 현재 매년 4월과 10월에는 삼성전에서 춘추제를 지내고 매년 12월 10일에는 혈단에서 건시제를 지낸다.
한편 삼도 2동에는 관덕정이 있다. 관덕정은 조선 후가의 목조 건물로 보물 제322호이다. 이 정자는 정면 5칸, 옆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 양식이며 긴 대석으로 앉힌 기단 위에 세운 것으로 주위 4면이 모두 트여 있다. 기둥 윗몸에는 창방과 그 밑에 引枋을 짜 돌렸으나 평방 없이 柱頭를 얹어 공포를 배치하고, 정혈화된 이익공 형식으로 외목도리를 받쳤다. 기둥과 기둥사이의 昌枋위에는 화반을 3개씩 배치하여 건물의 옆면과 뒷면에서 보면 장화반의 형태이다. 또 화반 위에서 운공이 뻗어나와 외목도리를 받게 하였으며 그 위에 서까래와 부연을 걸었고, 서까래의 끝은 모두 처마의 선과 똑같게 잘라져 있는 것이 색다르다. 옥내에는 앞 뒤 2줄로 4개의 큰 기둥을 세워 종량을 받쳤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큰 기둥과 주위기둥은 툇보로 연결하였고, 옆면 중앙의 기둥에서 대들보에 걸쳐 衝樑이 가설되어 있다.
관덕정에서 가까운 삼도 2동에는 제주목 관아지가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제주도 행정 중심지였던 관아가 있던 터로 사적 제3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대학교 조사단이 1991년에서 1996년까지 3차에 걸쳐 발굴 조사한 결과 이곳에서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문화층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의 주요 시설인 동헌, 내아 건물터 등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함으로써 이곳이 고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밝혀냈다. 따라서 이곳 남서쪽에 있는 관덕정을 포함하여 사적지로 지정하였다. 세종 17년(1435)에 고득종이 쓴 《홍화각기》에 따르면, 제주목의 관아 시설은 총 58동 206칸의 규모 였으며, 현존하는 관덕정은 세종 30년(1448)에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려고 창건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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