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인물] 왕수인의 주관적 유심주의 철학사상

등록일 2001.11.20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心外無理"와 "心外無物"의 주관유심주의적 우주관
2) “致良知”라는 주관유심주의적 경험론과 도덕관
3) 知로써 行을 대체한 “知行合一”설

본문내용

봉건 사회 속에서 위기의 출현은 통치계급 내부의 정권투쟁을 더욱 심화시켰다. 王守仁은 환관인 劉瑾의 원한을 사서 3년 동안 관직을 박탈당하고 貴州에 좌천된 적이 있었으나 뒷날 明 황제에 의해 다시 등용되었다. 왕수인은 일생을 통하여 이미 부패한 明왕조를 위해 일했으며 국내에서 발생한 소수 민족과 농민들의 봉기진압에 몸소 참여하였고 明왕조 종실 내부에서 발생한 宸濠의 난을 평정하였다. 이에 농민봉기 진압에 공을 세웠기 때문에 명왕조의 통치자에 의해 新建伯으로 봉해졌다.
그는 대관료 대지주의 입장에 서서 明왕조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몸
소 江西省 남부 등지에서 발생한 농민봉기를 진압하였다. 그가 明武宗에게 올린 글을 보면
1년 정도의 기간 동안에 1만 명 이상의 농민을 살해하였다. 그밖에도 그는 廣西의 思恩과
田州의 苗族과 기타 소수민족의 무장폭동을 진압하였으며 반란을 일으킨 소수민족에 대하여
극도로 잔인한 살육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는 소위 "去人欲, 存天理"의 "致良知"학설을 적극
제창하였으며 봉건도덕에 대한 신앙을 강화함으로써 사회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였다. 王
守仁의 주관적 유심주의 철학사상은 明왕조 지주계급들이 당면한 정치적 위기를 만회하고
부패한 봉건통치를 공고히 할 목적에서 제기된 것이다.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