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건축술의백미 경복궁] 경복궁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1.11.20
- 최종 저작일
- 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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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열심히 준비한 만큼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절대로 똑같이 쓰지는 마세요.. 교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목차
경복궁을 차례대로 돌아다니며 순서대로 각 건물의 모양과 느낀점등을 적은 리포트 입니다.
본문내용
경복궁은 조선 시대에 지어진 5개의 궁 가운데 으뜸이 되는 정궁이다. 이 궁은 1392년에 조선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떠나 서울을 새로운 나라의 터전으로 잡은 후 새 왕조의 궁전으로 1395년에 지은 것이다. 당시 한양으로의 천도는 태조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개경은 고려의 신하였던 구세력들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인지라 서울은 조선왕조의 새로운 기반이었고, 경복궁은 중요한 만큼 심혈을 기울여 터를 정하고 지은 것이다. 이렇게 지어진 경복궁의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1553년 대화제로 불에 타고 , 다시 임진왜란(1592)때 방화로 타버린 경복궁은 그후 250년 가량이나 버려진 채 있었다. 경복궁이 이처럼 버려진 채 있었던 것은 역대의 많은 왕들이 복구 의지는 있었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렇게 버려져 있던 것을 1865년 고종이 왕이 되면서 권력을 잡게된 그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외세에 의해 무너져 가던 나라의 기강과 왕조의 복구를 기도하며 막대한 돈을 들여 다시 지어지게 된다. 당시 흥선 대원군의 공사가 망해가는 왕조의 무리수 였는지도 모르지만 무너져 가던 왕조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던 흥선 대원군의 굳건한 의지가 담긴 공사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