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사] 장면과 박정희의 정치적 리더쉽 비교연구

등록일 2001.11.18 한글 (hwp) | 25페이지 | 가격 9,000원

목차

Ⅰ. 서 론
Ⅱ. 장면의 리더쉽과 정치적 정향
Ⅲ. 박정희의 리더쉽과 퍼스낼러티
...

본문내용

<2>. 4·19 이후의 사회상황과 장면의 위기대처 방식

4·19 이후의 사회상황은 한 마디로 '데모로 해가 뜨고 데모로 해가 지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이승만 정권 하에서 그 동안 억눌려 왔던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었기 때문이었으며, 당시의 장면정권이 이러한 요구 둘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심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장면은 그의 회고록(장면, 한 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p.77)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국의 역사이래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성심성의껏 노력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것이 제2공화국이었음은 사실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 땅에 심으려던 우리의 노력이 온갖 방해를 받아 피어나지 못한 점이 애석할 뿐이다. 국민 앞에 공약을 지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며 성심성의 양심적으로 국정을 맡아 보려던 우리의 고충은 너무나 고달프고 벅찼다.
우리들 각료는 거의 철야근무였다. 우리의 성의는 미처 결실을 보기 전에 끝내 무참히 짓밟혔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의 총리나 각료들의 헌신적 노력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뼈에 새겼다. 민주당 정권에 공역의 화살을 퍼부은 부외세력은 주로 구자유당의 잔여부대, 한민당의 구파, 좌익계의 소위 혁신세력 등이었으며, 이들과 장단을 맞추어 정부공격에 부채질한 것은 일부 언론계, 특히 신문들이었다. 8개월간의 민주당 집권을 통하여 일반 국민에게 남긴 인상이 반드시 소위〈무능〉과 〈부패〉일까. 혹자는 감투싸움이 빚어놓은 추태로 말미암아 국민의 신망을 잃고 말았다는 말도 한다. 당내 신·구파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감투싸움이라는 인상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부패하지는 않았다.

장면총리의 공보비서였던 송원영은 "장총리는 그야말로 不眠不休였다. 반도호텔 708호실은 요즘 웬만한 호텔의 스위트룸만이나 할까...... 이런 데다 총리를 모셔놓고 발 12시가 넘도록 사람단련을 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당시의 상황은 장면이건 누구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장면은 과거청산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으며 특히 사회변혁정책에는 보수적 경향을 보였다는 비판을 면할 수는 없다. 당시 국민들은 반민주행위자에 대한 처벌과 부정축재자들을 신속히 처리해 주기를 기대했지만, 장면 정권은 1960년 10월 8일의 6대 사건 판결에서 유충렬 전 시경국장에게 사형을 언도하여 발포명령의 책임을 넘기고 4·19를 마무리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드세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장면 정권은 정작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시대적 과제는 외면한 채 정당·언론·출판에 관한 민주화 입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만을 통과시킴으로써 사회적 불만과 욕구의 과도한 분출을 조장하였다.
장면은 당시의 사회적 혼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참고 자료

<정기간행물>
이경남, "4 · 19 와 張勉政權 의 붕괴 , Ⅰ . 裁判 을 통해 본 4·19"(月刊朝鮮 3,4(82.4) : pp. 70-94.)
주돈식, "4 · 19 와 張勉政權 의 붕괴 , Ⅱ . 張勉政權 의 붕괴전야"(月刊朝鮮 3,4(82.4) : pp. 95-117.)
김일영, "정계의 영원한 초대받은 손님;張勉論"(황해문화 7(95.6) : pp. 252-277.)
이윤기, "盧政權 6個月과 張勉政權의 類似点 ; 第2共和國"(思想과政策 20(88.9) : pp. 198-213.)
이 형, "李承晩·張 勉·朴正熙·全斗煥 歷代정권의 言論정책 비교"(엔터프라이즈 48(88.9) : pp. 344-359.)
피어드 실바, "美國 은 과연 張勉政權 의 崩壞 를 몰랐는가"(新東亞 213(82.5) : pp. 86-97.)
이경남, "朴正熙 , 윤보선 , 許政 , 張勉 의 紙上심판"(政經文化 221(83.7) : pp. 48-69.)
오유석, "李承晩·張勉·曺奉巖;극우와 보수,혁신의 소용돌이"(세계와나 31(92.5) : pp. 270-278.)
이상우, "張 勉總理 의 悲劇"(新東亞 293(84.2) : pp. 116-157.)
김갑식, "張勉총리 ,수녀원 피신55시간 ; 1961.5.16∼18까지"(朝鮮 62(85.5) : pp. 477-483.)
양동안, "張勉총리 와 朴正熙대통령"(新東亞 213(82.5) : pp. 146-157.)
박기정, "張勉政權270日天下"(新東亞 213(82.5) : pp. 98-145.)
이경남, "合憲政權 빼앗긴 張勉과 崔圭夏 누가 더 멍청인가?"(現代公論 1,5(88.9) : pp. 118-137.)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