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득실

등록일 2001.11.17 한글 (hwp) | 37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본 레포트는 붕당의 형성부터 붕당이 퇴색되어 세도정치로 까지 가는 흐름을 정리하였습니다. 각종 제도의 정보도 함께 수록함으로서 레포트를 읽어 보면, 이해하기 쉽고 대원군 이전까지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목차

1.서론
2.붕당정치의 출현
가. 사림의 대두
1)사림의 연원
2)사림의 성격
나. 사림의 정치적 성장
다. 조광조(趙光祖)의 개혁정치(改革政治)
라. 서원과 향약
1)서원
2)향약
마. 붕당의 출현
3.정국의 변화와 탕평책
가. 붕당 정치의 전개
나. 붕당 정치(朋黨 政治)의 변질(變質)
1)예송 논쟁
2)경신 환국(庚申換局) 이후
다. 탕편론 대두
1)숙종의 탕평책
2)영조의 탕평책 - 쌍거호대(雙擧互對)
3)정조(正祖)의 탕평책 - 청류탕평(淸流蕩平)
4.정치 질서(政治 秩序)의 파탄(破綻)
가. 세도 정치(世道 政治)의 전개
1)18세기 이후 조선 사회 변화
2)세도 정치(世道 政治)
나. 세도 정치(世道 政治)의 폐단(弊端)
5.결론

본문내용

1.서론
16세기 후반에 나타나기 시작한 사림(士林)의 붕당은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모습을 보였는데, 그 후 이합 집산을 거쳐 17세기에는 동인 계의 남인(南人)과 북인(北人), 서인 계의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정비되었다. 처음에는 북인이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인조 반정(仁祖 反正)으로 정계에서 몰려나고 서인이 집권(集權)하였다.
서인은 남인과의 공존 관계(共存 關係)를 잠시 유지하였으나, 1680년의 경신환국, 1694년의 갑술환국으로 남인을 완전히 제거하더니, 자체 분열(自體分裂)을 일으켜 노론과 소론으로 대립하였다. 경종의 즉위로 노론이 제거되고 소론이 집권하였으나, 곧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중용(重用)되었다. 영조는 처음에는 탕평책을 써서 양자의 공존을 꾀하였으나, 1728년 이인좌의 난을 계기로 점차 노론으로 기울어지고, 사도세자 사건으로 노론이 정치(政治)를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정조가 즉위하여 탕평(蕩平)을 내세워 소론과 남인이 기용(起用)되기도 했으나, 순조 이후 세도 정치가 시작되면서 노론 일당의 전제화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붕당 정치의 출현(出現)과 붕당 정치의 전개(展開) 그리고 붕당 정치의 변질(變質)과 붕괴(崩壞)로 이어지는 과정과 벌열 세력의 세도 정치(世道 政治) 까지의 흐름을 알아보고 이러한 붕당 정치가 가져온 득(得)과 실(失)을 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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