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의 사회 및 민족운동사

등록일 2001.11.13 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900원

목차

** 일제의 정치적 침략
** 일제의 경제적 침탈
** 일체의 침탈에 대한 저항
** 일제에 저항한 민족운동의 발전
** 8·15 해방이후 사회변화

본문내용

펑톈회전 전후부터 러일 양국의 전쟁 수행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다. 특히 러시아는 계속되는 패전으로 사기가 침체되고 그 해 1월 ‘피의 일요일’로 비롯된 군대의 반란과 농민폭동(제1차 혁명)이 일어나 혁명 진압이 급선무였다. 약 20억 엔[円] 의 전비(戰費) 가운데 12억 엔의 공채 모집에 응함으로써 일본을 지원하였던 영국·미국도 일본의 승리가 만주의 단독 점령으로 발전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미국 프랑스는 3,4월경 러일 양국에 강화할 것을 종용하였고, 동해해전(東海海戰)후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인 미국 대통령 T.루스벨트의 알선으로 8월 포츠머스 강화회의 가 열렸다. 일본의 전권(全權)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 외상, 러시아의 전권 비테 전 재무장관이 참가하여, 남 사할린섬의 할양(割讓)을 내용으로 한 조약이 9월 5일 조인되고, 16일 휴전이 성립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한 국지배권의 확립과 남만주 진출이 결정되고, 이것이 동시에 대륙의 권익을 꾀하는 미국과의 대립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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