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위안부

등록일 2001.11.12 한글 (hwp) | 20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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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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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 여성의 강제 동원
일본 제국주의의 군대가 그 군인들의 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 바 '위안소'라는 것을
처음으로 설치한 것은 1931년 만주 침략을 시작한 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적은 수의 위안소를 설치해 이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1937년 남경대학살
사건을 계기로 일본군이 주둔한 모든 지역으로 확대 설치했다.
수많은 중국인을 학살하고 남경을 점령한 일본군들이 약탈과 방화를 일 삼고, 특히 점령지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강간했다. 이러한 일본군들의 만행에 중국인들이 심한 반발을 사 반일
감정이 격해지자 일본군이 점령지를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켰다. 이런 연유로 일본군은 군대
가 주둔하는 모든 지역에 성적 위안시설을 하루속히 정비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 조선, 대만, 만주, 중국, 남양군도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어느 곳에서나
일본군 주둔지에는 반드시 위안소가 설치되었다. 위안소는 군대가 직접 설립해서 경영하거
나, 민간인에게 위탁하여 경영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2백만 명이 넘는 일본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많은 '위안부'들은 어디서
구할 심산이었을까. 일본에서는 '천황의 신민이 될 아들을 낳아 바칠 신성한 의무'를 가진
일반 여성들은 동원하지 않고, 매춘을 직업으로 하는 공창의 여성들만을 동원했다. 물론 이
들 여성이 엄청나게 많은 군인들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따라서 일본 제
국주의자들은 위안소를 세울 때부터 식민지 여성들을 강제 동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
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역시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 중에서 일본인 매춘부는 소수에 불과하고, 일부는 중국인, 필리
핀인, 네덜란드인 등 일본군 주둔지의 현지인이며, 그 나머지 80-90%는 강제 동원된 약 20
만 명의 조선인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위안소에서 여성들을 검진했던 군의관이나 이들 여성
에게서 성적 욕구를 충족시켰던 많은 군인들이 증언하고 있는 바이다. 군의관 아쏘 데츠오
는 "위안부의 대부분은 조선 여자인데, 이들은 일본인 위안부와는 달리 성병에 걸린 적이
없는 깨끗한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우리는 1930년대 말부터 노골화되었던 일제의 조선민족 말살정책을 기억한다. 창씨개명으로
조선인의 성을 없애고, 신사참배로 조선인의 정신을 빼앗으려 했다. 또한 조선민족을 만주나
시베리아로 이주시키거나 일본인과 혼혈시킴으로써 한반도에서 조선민족을 말살하고자 기도
했다. 일제의 만행이 이러한 실정에 이르렀으므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며 살아서도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될 위안부, 즉 일본군의 성 노예로 조선의 어린 소녀들을 동원한 것은 예정된
귀결이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전쟁에 끝난 뒤 관계 자료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민간 업자들이 여자들을
사온 것이지, 정부가 나서서 여자들을 동원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토록 <<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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