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보충대를 통한 신분변동

등록일 2001.11.11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補充隊를 통한 身分變動

본문내용

조선초기 신분구조를 통해 사회성격을 이해하고자 할 때 이해해야 할 것은 四分法의 兩班制說과 二分法의 良賤制說이다. 전자가 양반을 신분으로 규정한 반면 후자의 견해는 양반을 단지 양인신분의 상위계층으로만 인정한다. 특히 후자의 견해는 당시의 국가가 軍役과 賦稅를 기본의무로 하는 다수의 양인을 확보하기 위해 고려 말 한때 私民化되었던 천인들을 從良하는 양인 확대정책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조선왕조의 개창으로부터 보충군이 설치되기 이전까지의 사회정책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토지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노비문제이다. 이 시기의 토지문제는 私田改革을 통한 科田法體化로 일원화되었다. 그러나 노비문제는 奴婢辨定都監을 설치하는 등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으나 홍건적의 난으로 公私典籍이 유실된 결과 다수의 유망노비가 발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문세가의 토지와 인구집중에 따른 양인의 私民化심화되었고 한편 조선왕조가 추진한 양인확대정책이 구귀족의 재정적 기반을 붕괴시킴으로써 신 구정치 세력이 상호 갈등관계에 있었던 것 때문에 태종15년 補充軍이 설치될 때까지 몇 번의 치폐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보충대도 세조와 세종대를 거치게 되면서 다양한 변화를 겪다가 성종때에 이르러 良人婢妾 소생의 補充隊 입속이 대폭 축소되거나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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