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1.11.09
- 최종 저작일
- 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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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춘추관과 사관
2. 실록의 편찬과정
3. 실록의 보관
4. 실록의 국역사업
5. 나의 의견
본문내용
1. 춘추관과 사관
조선의 역사기록을 담당한 관청은 춘추관(春秋館)이었다. 춘추관은 고려왕조에서 실록편찬을 위하여 설치한 사관(史館)이 말기에 예문관(藝文館)과 통합되었던 예문춘추관을 계승하였으나, 태종 원년 7월에 관제개혁에 의해 춘추관으로 독립되었다.
예문관의 관원인 봉교(奉敎 : 2원)·대교(待敎 : 2원)·검열(檢閱 : 4원)의 8원이 주로 춘추관의 사무를 담당하여 사초(史草)와 시정기(時政記)를 작성하였는데, 흔히 이들을 사관(史官) 또는 한림(翰林)이라 불렀다.
사관의 역할은 군주의 언행과 정사를 기록함으로써 시정의 득실을 논하고 풍속의 미악(美惡)과 사정(邪正)을 가려서 유교적인 왕정의 덕치이념을 구현하는 데 있었다. 사관은 고려시대에 갖추어 졌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중시되었다. 조선은 유교국가였던 만큼 사학과 경학과 더불어 유자의 필수교양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시대보다 더욱 고조되었다. 따라서 사관은 모든 관직 가운데 가장 청요한 관직으로 인정되어 문과 급제자 가운데 경사와 문장이 뛰어나며 가계에 아무런 흠이 없는 사람만이 임명될 수 있었다. 사관의 선임방법은 다른 관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사관이 그만큼 중요한 직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크게 본문과 세주 그리고 사론(史論)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관이나 실록편찬관의 견해가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 사론이다. 사론은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으로, 주로 사관이 작성해두었던 사초를 활용하였으며 서두에 ‘사신왈’을 붙이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