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직후의 국어정책] 광복직후의 국어정책

등록일 2001.11.06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광복 직후의 국어정책
교과서 편찬
국어 교원 양성
국어 교원 긴급 양성
세종중등국어교사양성소
미군정청의 문자 언어 정책
한글맞춤법통일안 개정 및 미군정청 채택
사정한 표준말
외래 표기법

본문내용

광복 직후의 국어정책

연합국의 승리와 일본의 항복으로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을 맞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잃었던 우리말을 되찾아 마음 놓고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일본말 찌꺼기를 쓸어내고, 한국 보급과 국어를 순화하는 운동이 힘차게 전개 되어 갔다.
한편 「조선어학회」는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 10월 1일 검거되어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함흥 감옥에서 옥고 생활을 하던 회원 이 극로, 최 현배, 이 희승, 정 인승님이 8월 17일 출소되어 8월 18일 서울에 도착하고, 흩어졌던 회원들도 서울로 모여들자, 출옥한 회원들의 여독도 풀새 없이 8월 19일에는 행회 간부회의, 학회 재건 회의를 열어 당면 방침을 정하고 임시총회를 열어 학회의 진용을 정비하고 일을 할 채비를 차려, 새 나라의 새교과서 엮기와 국어교원 양성, 국어사전(큰사전) 편찬 완결, <한글>지 속간, 한글 보급 운동 등을 하는 한편, 한글전용 운동도 적극 벌리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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