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이청원, 전석담

등록일 2001.11.06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600원

목차

1. 이청원의 생애와 역사인식
(1) 경력
(2)우리 역사에 유물사관을 적용
(3)유물사관에 입각한 최초의 통사 『조선역사독본』
2. 전석담의 생애와 역사인식
(1) 경력
(2) 노예제사회 존재를 부정
(3) 여말선초 전제개혁의 역사적 성격
(4)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전쟁)에 있어 '동학 외피론'

본문내용

이청원의 출생연대와 출생지는 불분명하며, 1930년대 초반 이전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그는 일찍부터 일본에서 일본공산청년동맹 중앙부 조직책, 일본반제동맹원,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 회원 등등 사회주의자로 활동하였다. 1934년 9월경 일본 경시청에 검거 되어 같은 해 12월 10일 기소보류처분을 받아 석방된 후 1938년 5월부터는 도피생활에 들어가는데 그 와중에서도 와세다대학 '우리동창회'의 고준석·송군찬 등이 펼치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도와 그 운동방침 문건을 함께 작성하였다. 1940년 5월 14일 경시청에 의해 다시 검거되었는데, 기소되어 동경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 나왔으나 재판에서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여 1943년경에 석방되었다. 8·15해방 후에는 장안파 조선공산당에 가담하였으며, 1945년 9월 8일 선포된 조선인민공화국의 후보중앙위원과, 1946년 2월 14일에 결성된 민주주의민족전선의 토지·농업문제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1946년중에 월북하였는데 그 후에도 『조선근대사』등 왕성하게 역사관계 논저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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