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후삼국 통일정책

등록일 2001.10.30 한글 (hwp) | 25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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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왕건이 즉위 직후 평양을 대도호부로 삼은 것과 패서세력의 근거지며 자신의 고향인 송악을 황도로 삼은 것은 패서세력들의 동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왕건이 황제가 되면서 그동안 궁예에 반항했던 대다수 패서세력은 이같은 왕건의 우호적인 정책으로 왕건 자신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왕건이 패서지역에서 가장 많은 부인들을 맞아들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되는 것이다. 평양은 고구려의 수도였다는 것이 통설이나 이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이의를 제기해 다소 논란이 있지만 최소한 왕건에게는 북방으로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음에는 분명하다. 강원도 지역의 경계는 김순식 정권이 있었다. 그러므로 왕건은 패서세력의 본거지의 안위와 북방정책의 요새이며 본거지로 평양을 크게 일으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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