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사상이란...

등록일 2001.10.30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1,100원

소개글

조선 후기에 개화파가 발전시킨 부르주아적 개혁사상. 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박지원(朴趾源)의 손자 박규수(朴珪壽)와 역관 출신 오경석(吳慶錫), 의관 출신 유홍기(劉鴻基) 등이었다. 이미 실학적 학풍을 체득한 박규수는 1861년과 72년 두 차례 북경에 가서 자본주의 열강의 무력에 굴복한 청의 현실을 목격하였고, 66년 평안도감사 시절 제너럴셔먼호 사건 등을 직접 겪으면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지닌 열강에게 대항하려면 문호개방을 통한 조선의 부국강병이 절실하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중인 출신의 역관 오경석은 50년대부터 사신을 따라 천진·북경 등지를 드나들면서 중국에 유입된 새로운 서구문물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서양문물을 소개한 《해국도지(海國圖志)》 《영환지략(瀛環志略)》 《만국공보(萬國公報)》 등의 신서(新書)를 가지고 왔다.

목차

개화사상(開化思想)

본문내용

조선 후기에 개화파가 발전시킨 부르주아적 개혁사상. 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박지원(朴趾源)의 손자 박규수(朴珪壽)와 역관 출신 오경석(吳慶錫), 의관 출신 유홍기(劉鴻基) 등이었다. 이미 실학적 학풍을 체득한 박규수는 1861년과 72년 두 차례 북경에 가서 자본주의 열강의 무력에 굴복한 청의 현실을 목격하였고, 66년 평안도감사 시절 제너럴셔먼호 사건 등을 직접 겪으면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지닌 열강에게 대항하려면 문호개방을 통한 조선의 부국강병이 절실하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중인 출신의 역관 오경석은 50년대부터 사신을 따라 천진·북경 등지를 드나들면서 중국에 유입된 새로운 서구문물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서양문물을 소개한 《해국도지(海國圖志)》 《영환지략(瀛環志略)》 《만국공보(萬國公報)》 등의 신서(新書)를 가지고 왔다. 이 책들은 모두 화이론적 세계관에 젖어 있던 봉건 지배층에게는 이단이었지만, 쇄국정책을 펴던 조선에서 세계정세와 서구사회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입문서이기도 하였다. 오경석은 자연히 시대에 뒤떨어진 조선 봉건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고, 자신의 동지이자 절친한 친구인 의관 출신 유홍기에게 자신이 중국에서 구입해온 책과 보고 들은 것을 전하며 함께 연구할 것을 권하였다. 두 사람은 구입한 문명서적을 바탕으로 세계정세를 연구하여 사회제도로서의 자본주의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조선이 얼마나 뒤떨어졌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낡은 봉건제도를 청산하지 않고는 구미열강의 침략으로 나라가 멸망하리라고 생각하고, 나라의 발전을 위한 일대혁신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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