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사] 고건축을 찾아서(서울동묘..)

등록일 2001.10.29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많은 참고가 되시길...

<운영자 : 사진자료 풍부합니다>

목차

1.동묘를 알기전에 대한 지식들
1) 관운장(關雲長) (?∼219)
2)동묘를 조선의 시점에서 어떻게 보았는가?
3)서울동묘
4)동묘는 무슨 건물인가?
2.동묘를 찾아서.
1)동대문
2)동묘표지석
3)동묘 정문에 있는 현판과 안내문
4)소문
5)옆건물
6)★동묘★
7)답사 후 관제묘에 대한 나의 느낌

본문내용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장군. 지금의 산서성 원청현 하동군 해현 사람. 이름은 우(羽), 운장(雲長)은 자, 시호는 충의후. 유비, 장비와 도원의 결의를 하여 평생 의(義)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송대 이후 군신(軍神), 복록장수신(福祿長壽神)으로 신앙되고 관제묘가 각처에 건립되었으며 조선에도 임진왜란 이후 관제묘가 건립되었다. 관운장의 모습을 전해 내려오는 책을 토대로 살펴보면, 키가 구척장신에 수염의 길이가 두 자로서 삼각수(三角鬚)이며,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하며, 눈은 봉의 눈이며, 누에눈썹같이 짙고, 위풍이 늠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수염이 길고 아름다워 미염공(美髥公)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조조에 대항하여 유비·관운장·장비가 대항하여 외로운 투쟁을 할 때, 관운장은 하비성을 책임지며 형님의 가족인 두 부인과 어린 아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세(時勢)의 불운(不運)으로 형세가 위태로워 하비성이 조조의 침입으로 함락되고 유비 가족의 생사를 모르게 되자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하려고 하였다. 이 때 조조의 막하 장군으로 평소 관운장을 사모하던 장료의 ‘자결 삼불가설(三不可說)’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이 모자람을 인정하여 결코 굴욕적이 아닌 항복을 하게 되었다. 장료가 말한 삼불가설은 첫째, 한날 한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죽을 때는 한날 한시에 죽자는 도원결의(桃園結義)에 위배되는 것이며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