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의 생애와 사상

등록일 2001.10.24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100원

목차

1. 생애
2. 교육자 김교신
3. 기독교인 김교신
4. 지리학자 김교신
5. 마치며

본문내용

1. 생애
종교인이며, 교육가이기도 한 김교신은 1901년 4월 함남 함흥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공부하다가 함흥보통 학교를 거쳐 1919년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하였고 같은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교 세이소쿠영어학교에 입학 1927년 도쿄[東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무교회주의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에게 사숙하였다. 귀국 후 영생고보(永生高普)·양정고보(養正高普)·개성 송도고보(松都高普)·경기중학 등에서 박물학(博物學)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27년 함석헌(咸錫憲)·송두용(宋斗用)·정상훈(鄭相勳)·유석동(柳錫東)·양인성(楊仁性) 등과 함께 《성서조선(聖書朝鮮)》을 창간, 교리전파에 심혈을 기울였고, 양정고보 재직시에는 ‘물에 산에’라는 모임을 만들어 학생들과 서울 근교의 고적과 능묘·사찰 등을 답사하면서 민족의식과 역사감각을 고취하여 독립사상과 자립의지를 심어 주었다. 40년 경기중학으로 전근되었으나 불온교사로 낙인이 찍혀 6개월만에 사임하고, 다음해 송도고보로 옮겨 민족주의 교육, 국적 있는 역사교육을 통해 민족혼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활동은 《성서조선》 158호(1942년 3월) 권두언 <조와(弔蛙)>와 같은 글로 나타나 함석헌 등 13명과 함께 1년 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이를 ‘성서조선사건’이라고 하는데, 글의 내용은 극심한 겨울 추위에 다 얼어 죽고 용케 살아남은 두세 마리의 개구리에 대한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