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실학파의 정치사상

등록일 2001.10.21 한글 (hwp) | 27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많은 참고가 되시길..
아마 후회는 없을듯....^^
정말 열심히 준비한 겁니당..ㅋㅋ

목차

서론

본론
1.실학의 개념 및 변천
2.실학의 형성과 사회발전
3.실학사상의 특징
본론2
초기실학선구자의 사상
(1)이수광
(2)(반계)유형원

결론

본문내용

실학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약칭으로 중국 전한서의 "학문을 닦고 옛것을 좋아하며, 실제의 일에서 옳은 것을 구한다."는 말에서 연원한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55년에 서한 경제의 아들 유덕이 하간헌왕(지금의 하남성안)에 봉해졌다. 그는 학문을 좋아하여 옛 책을 모으고 학자를 초빙하여 유학을 장려하였다. 그리고 허무(허무)를 숭상하는 황노학과 신비한 도참설을 배척하고, 수신, 제가, 치국의 도와 예악형정(禮樂刑政)의 법을 숭상하였다. 그리하여 "학문을 닦고 옛 것을 좋아하며 실제의 일에서 옳은 것을 구한다."는 칭송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실학은 아직 한 학풍의 대명사는 아니었다. 중국에서 실학이 학풍의 대명사로 출현한 것은 17세기 후반기로부터 18세기 전반기 사이로, 고증학풍(考證學)의 출현에 따라 점차 실사구시의 학풍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실학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신라의 신흥지주 계급은 불교와 비교할 때 유교의 충효, 윤리 도덕이 봉건 통치 질서 유지를 위한 봉건 등급제도의 합법화에 좀더 실용적인 학문, 즉 실학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신라, 고구려의 통치 계급은 불교를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삼세윤회(三世輪廻)'와 '인과응보(因果應報)'를 선양하는 불교의 교의는 백성으로 하여금 현실의 모든 압박과 고난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으로, 봉건 통치 계급이 백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데 유익하였다. 다만 유교가 '삼강오상'이라는 충효, 도덕 규범을 가지고 봉건적 종법제도를 옹호 하는데에서 불교보다 실용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신라, 고구려의 통치 계급은 봉건 종법제도를 합법화하고 백성들의 투쟁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유교를 '치국의 근본'으로 삼고, 불교를 '수신의 근본'으로 삼아서 유불 병흥정책을 실시하였다.

참고 자료

한국철학사상사, 송홍성외 2명, 예문서원
한국실학사상연구, 집문당
한국사상의 과학적 이해를 위해, 한국역사연구회, 청년사
실학파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적 견해, 정성철, 한마당
이야기 한국철학, 한국철학사연구회, 풀빛
한국정치사상사, 김우녕, 이문출판
한국 유학의 탐구, 금장태, 서울대출판사
근대한국정치론, 조휘각, 보고사
조선철학사, 한국철학사연구회, 이성과 현실사
조선철학사(이조편), 정성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한국철학사상사, 주홍성외 2명, 예문서원
한국유학사상론, 윤사순, 예문서원
조선철학사 개요, 최필승, 한마당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