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비형랑과 무열왕
- 최초 등록일
- 2001.10.14
- 최종 저작일
- 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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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무열왕의 아버지 용춘
■도화녀(桃花女) 비형랑(鼻形郞) 설화
■비형랑의 아버지 진지왕
■복사꽃처럼 예쁜 도화녀
■이상한 이름 비형(鼻荊 )
■용의 형상
■용이란 사실을 감춘 이유
■왕궁에서 자란 비형랑
■화랑이 된 15세의 소년
■귀신을 부리고 쫓는 비형
■비형의 역사적 실체 용춘
■용(龍)인 용춘
■건축의 달인
■귀신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
■성제(聖帝)의 아들이나 진골인 용춘
■용춘의 말년
■진실을 말하는 민중
본문내용
■무열왕의 아버지 용춘
신라의 왕위 계승 세력은 성골이었다. 하지만 이런 성골이 신라 말까지 왕위를 차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골이 끝난 뒤 다음 세력, 진골의 새로운 인물에 의해 신라는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진골의 첫 왕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武烈王(재위: 654~61), 바로 김춘추이다. 그는 眞智王의 아들인 龍春과 眞平王의 딸인 天明夫人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이 용춘(龍春)이란 인물은 비록 왕은 아니었지만 김춘추가 왕이 되는데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를 하고 있다. 용춘은 폐위된 진지왕의 아들이라는 아주 불리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성골왕이 지배하던 중고기 후반에 살면서 인망을 쌓아 아들인 김춘추의 앞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다하였으니, 실질적으로는 삼국통일을 이루고 국가를 크게 발전시킨 무열왕계의 싹이 된, 참으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용춘(龍春), 일명 용수(龍樹)는 그가 진지왕(眞智王)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하지만 실제로 그가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화녀(桃花女) 비형랑(鼻形郞)>설화를 분석하여 실각한 진지왕의 아들 용춘이 성골 왕실을 대신하여 새로운 진골 왕실을 여는 싹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