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학사에서의 연암 박지원 문학의 가치평가

등록일 2001.10.14 MS 워드 (doc)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북한문학사에서의 연암 박지원문학의 가치평가
1. 해방전 조선 문학에서의 연암 박지원문학의 가치평가
2. 북한의 문예이론
3. 북한 문학사에서의 연암 박지원문학의 가치평가
Ⅲ. 연암 박지원문학의 대표작에 대한 가치평가
1.『양반전』에 대한 가치평가
2.『허생전』에 대한 가치평가
3.『호 질』에 대한 가치평가
Ⅳ. 끝맺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박지원(朴趾源, 1737 ∼1805)는 조선후기의 문신·학자이며,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자는 미중(美仲)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1752년(영조 28)에는 전주 이씨 보천의 딸과 혼인하면서 《맹자》를 중심으로 학문에 정진하게 되었으며, 특히 보천의 아우 양천에게서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비롯하여 주록 역사서적 교훈을 받아 문장 쓰는 법을 터득하고 많은 논설을 습작하였다.
그에게서 배운 《사기》의 심대한 영향은 연암의 작품 세계에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20세 무렵 연암은 산사를 찾아다니며 과거 준비에 전념했다. 1756년 지은 그의 총기 한시 「원조대경」에는 학업에 정진하던 당시의 모습이 잘 들어나 있다.
1760년 할아버지가 죽자 생활은 더욱 궁하였고, 그 사이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이후로 과거시험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768년에 백탑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어 박제가,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유금등과 이웃하면서 학문적 깊은 교유를 가졌다. 이때를 전후하여 홍대용, 이덕무, 정철조등 과는 이용후생에 대해여 자주토론하였으며, 이 무렵 유득공, 이덕무 등과 서부지방을 여행하였다.
이 당시 국내정세는 홍국영이 세도를 잡아 벽파에 속했던 그의 생활은 더욱 어렵게 되었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어 결국 황해도 금천 연암협으로 은거하게 되었는데 그의 아호가 연암으로 불려 진 것도 이에 연유한다.
그는 이곳에 있는 동안 농사와 목축에 대한 장려책을 정리하게 되었다. 1780년(정조 4)에 처남 이재성의 집에 머물고 있다가 삼종형 박명원이 북경을 갈 때 수행하여 압록강을 거쳐 북경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때의 견문을 정리하여 쓴 책이 『열하일기』이며 이속에는 그가 평소에 생각하던 이용 후생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이 저술로 인하여 그의 문명이 일시에 드날리기도 하였으나 문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