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논개'를 보고나서...

등록일 2001.10.09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 서론 >
< 본론 >
< 결론 >

본문내용

우선,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논개는 진주 관기였다'라고 밝혀져 있다. 진주성 함락을 자축하는 왜군들의 축하연에서 왜장을 살해했다는 상황은, 논개가 기생이었으리라는 생각의 반증이 될 만하다. 논개는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기생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갖은 수모를 겪었다. 논개의 친정 쪽인 신안 주씨 가계에서건, 논개가 부실로서 섬겼던 최경회의 해주 최씨 가계에서건, 논개는 기생으로 여겨져 가문의 수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쟁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상급을 내릴 때도, 논개의 행위는 인정되지 못했다. 그녀가 기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개와 함께 진주성을 지켰던 진주 사람들에게 논개는 일개 기생이 아니었다. 기생의 신분임에도 의를 세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진주 사람들의 의기를 대변해주는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런 진주 사람들의 합의와 정성이 모여서, 논개는 의기(義妓)로 칭해졌으며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떨어졌다는 바위는 의암(義巖)이라 불리게 되었고, 의암사적비가 세워졌으며, 이윽고 의암별제를 두어 제례의식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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