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개론] 박정희의 '위로부터의 혁명'

등록일 2001.09.23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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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고 자료 되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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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본문내용

국영 서울방송이 군사혁명 포고문을 낭독하고, 군사혁명 위원회의 6개 공약을 군사혁명 위원회 의장 육군중장 장도영의 이름으로 전한 것은 1961년 5월 16일 아침 5시 30분이었다.
궐기의 그날. 박정희 소장의 마음속에는 오직 혁명의 수행과 혁명성취 후의 신속한 원대복귀밖에 없었다. 이것은 18년에 이른 박정희 장기정권의 추적에 앞서서 확인해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날 아침 3시, 혁명행동을 일으킨 것은 육사 2기 출신의 박정희 소장을 정점으로 5기, 8기 출신의 중견 간부 장교들이 거느리는 제1공수단, 제6군단포병대, 제30. 33예비사단의 육군부대와, 독자적인 혁명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면서도ㅛ 박정희 소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궐기에 합류했던 해병대 김도하예비역 소장 휘하의 해병여단을 합쳐서 3600명의 장병이었다.
18일 장면내각이 총사직하고 윤보선 대통력은 장면내각의 최후의 각의 결정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계엄령을 선포하는 동시에, 서울방송을 통해서 '문민정부가 조직되는 동안 군사혁명 위원회가 국가의 최고권력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밝혔다. 이에 따라 19일 군사혁명정부는 이제까지의 군사혁명위원회의 명칭을 '국가 재건 최고회의'로 바꾸고 의장 장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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