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역사

등록일 2001.09.21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대학로의 역사
대학로 도 시 설 계

본문내용

조선의 역사가 시작되며 태조는 1394년 서울을 조선의 도읍지로 정하였다. 이에 정도전은 이 도시에 20만명의 인구를 생각하고 도시계획을 마련하였다. 이때의 경계는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 북쪽의 북악산으로 하였다.
그 당시에는 도시계획의 근간이 풍수지리설이었고 배산임수의 지형과 좌청룡, 우백호의 입지를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좌청룡의 입지에 해당되는 곳이 낙산이었고, 그 기슭에 자리잡은 곳이 동숭동이다.
낙산의 지맥은 주산인 북악산에서부터 내려오기 때문에 서울이 조선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에도 한동안 도시의 동쪽경계로 되어졌고 산 위에 성벽을 쌓았는데 성벽의 양쪽에는 혜화문과 동대문이 위치하였다. 이 지역은 조선 초기 한성부를 5부 52방의 행정구역으로 나눌 때 동부 숭교방에 속했으며 이후 동촌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이 되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인접해 있었고, 근대사의 장이 열리면서 동숭동에도 그로 인한 영향으로 외세에의 대응을 위한 공업전습소가 설립되어 독자적인 기술양성을 꾀하기도 하였다.
한일 합방이 되어 우리가 일제의 치하에 놓이게 되면서 우리의 애국지사들은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1920년 이후 조선교육회를 조직하여대학의 설립을 계획하고 일제의 인가를 꾀하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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