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
- 최초 등록일
- 2001.06.21
- 최종 저작일
- 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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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좌우합작과 남북 합작에 관하여
본문내용
좌우합작운동은 제1차 미·소공위가 결렬돼 남북분단이 민족 앞에 현실로 대두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1차공위 결렬 후 손잡아 좌우합작운동을 이끈 양날개는 우파의 김규식, 좌파의 여운형이다. 김규식은 미·소공위 휴회 직후 열린 「독립쟁취국민대회」에서 『남의 손에 정부가 수립되기를 기다릴 것 없이 이제 우리가 자율적으로 정부를 세우자』고 역설한다(한성일보 1946년 5월 14일자). 그리고 그 방안으로남쪽에서 먼저 좌우파간에 합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과 북의 정파가 통합해 통일정부를 이루자는 「좌우합작론」을 내세 웠다. 당시 김규식은 우익의 집결체이자 미군정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의 의장이었다. 김규식의 제안에 좌파모임인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장단의 한 사람 여운형(조선인민당위원장)이 대뜸 지지하고 나섰다. 1945년 12월에 이루어진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보통 신탁통치로 잘못 알려졌다. 그러나 이 결정의 핵심은 조선을 민주주의적으로 재건하겠다는 것이었다)을 둘러싼 대립은 정계를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과 민주주의민족전선이라는 좌우가 분립되는 형세로 만들었다. 이같은 좌우대립을 깨치고 친일파를 제외한 민족 모두가 힘을 합쳐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고자 시도했던 최초의 인물은 여운형이었다. 여운형은 암흑같은 일제 말기에 건국동맹이라는 조직을 결성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