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에 의한 후삼국의 통일
- 최초 등록일
- 2001.06.15
- 최종 저작일
- 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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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머리말
2.통일신라의 붕괴와 후삼국의 성립
1)통일신라의 붕괴
2)후삼국의 성립
3.왕건의 등장과 통일
4.왕건의 통일정책
5.맺음말
본문내용
王建은 국호를 다시 高麗라 하고 연호를 天授라 하여 고구려의 부흥과 계승이념을 뚜렷이 하였다. 다음해에는 수도를 자신의 본거지인 松嶽(開城)으로 옮기었다. 고구려의 후계로 자처하는데 있어서 왕건도 궁예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왕건은 새로운 국가로서의 면목을 일신하기를 원하였으며, 그 목적으로 수도를 자신의 본거지로 옮겼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적·군사적 기반을 확고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호족으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나타내 주었다. 중앙의 왕자이었던 궁예나 장군이었던 견훤과는 달리 그가 호족이었다는 것은, 그를 뒷받침해주는 토착세력이 있었으며, 한번의 정변으로써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었음을 말하여 준다. 또 여러 호족들과도 굳게 연결할 수 있는 성격을 그가 지니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이 그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