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역사와 미래를 말한다'를 읽고

등록일 2001.06.14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 서 론

◎ 본 론

◎ 결 론

본문내용

이 책은 세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비교하면서, 같은 유교와 한자를 문화적 공통분모로 하면서도 세나라는 서로 다른 민족의 원형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민족이 갖고있는 원형에 따라 한·중·일 세나라는 역사전개 양식이 다르고 근대화 과정이 크게 달랐다는 점을 기술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엄청나게 거대하며,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한편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드물 정도로 균질성이 짙은 단일민족 국가이다. 일본의 정치가들은 일본이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오키나와인, 아이누인 등의 이민족을 포함하고 있고, 문화도 한국에 비해서는 훨씬 다양화되어 있다. 즉 한·중·일 세나라를 하나의 시야에 놓고 생각한다면 균질성과 다양성의 문제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세나라는 유교의 색깔도 제각각이다. 중국의 유교가 생활과 밀착된 생활유교라면, 일본의 그것은 하나의 교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 비해 더욱 절대화된 유교를 갖고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는 중국과 어느정도 평행선이 유지되고 있었다. 처음 공자의 가르침, 원시유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였지만, 국교적 성격을 지니게 된 것은 삼국시대였고, 신라 때에도 왕성했다. 그후 중국에 주자학, 서구에서는 원시유교와 구별하여 신유교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것이 한국에 곧바로 수용되게 된다. 주자학은 민족주의적 경향이 짙었다. 조선 주자학은 흑백논리로 경직화되어 공리공론으로 흐르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실학사상이다. 실학자들 대부분은 주자학적 교양을 지닌 학자들이었다. 일본 유학자 대부분이 양명학을 겸하는 이른바 주주야양의 태도를 지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에서는 무사가 지배계급이었으니까 지행합일을 내세우는 실천적인 양명학이 인기가 있어던 것이다. 한국은 사대부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관념적인 주자학이 득세였다. 특히 유교사상의 규범 내지 도덕적 수행을 쌓아 인격을 도야하는 것이 인간의 올바른 도리라는 사고가 아주 철저했다. 그러한 사고 때문에 인간의 감정과 정서 같은 것은 무시되게 마련이었고, 개성을 적극 나타내는 창조성이 억제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고전을 열심히 따르고 답습하는 것만이 올바른 학문으로 평가받았던 것이지요. 한국 사회에 침투한 유교의 정도는 중국 이상이었다. 국토가 좁은 탓에 권력은 백성을 철저하게 옭아맬 수 있었으므로 국시화된 유교 이데올로기는 백성의 생활을 일일이 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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