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산업구조
- 최초 등록일
- 2001.05.06
- 최종 저작일
- 2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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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대전산업단지 현황
Ⅲ. 산업단지 경영실태
Ⅳ. 산업단지 입주업체의 경영개선방안
Ⅴ. 요약 및 결론
1. 실태조사
2. 조사업체 개황
3. 설비투자
4. 생산현황
5. 원자재조달 및 판매현황
6. 기술개발 및 생산성향상
7. 금융현황
8. 인사관리, 경영전략 및 재무상태
9. 산업단지 현황
<참고문헌>
본문내용
구도심 형성의 시작은 대전역이었다. 경부선의 역으로 1905년 1월 1일 문을 연 대전역은 대전 도시발달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역이 설치되면서 일본인들이 대전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대전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일본인들의 거류지가 서쪽으로 전개됨에 따라 구도시는 대체로 동에서 서로 확산되어 왔다. 도시가 동에서 서로 확장됨에 따라 1912년, 대전역을 건너 서쪽으로 연결되도록 목척교(폭 5.45m, 길이 70m)를 가설하였다. 이 다리는 1978년 복개되었고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현 동양백화점)가 건설되었다.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됨에 따라 대전은 지방 행정 중심지로 부상되었다. 1932년 5월 30일 준공된 충남도청은 대전천과 유등천의 중간에 입지한다. 공주에서 도청을 이전하기에 앞서 목척교의 확장과 대전역과 도청을 잇는 직선도로의 폭을 두 배로 확장하였다. 도청의 이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이어 1938년에는 대전지방법원, 대전지방 검찰청 등 관련 행정기관의 이전을 유발시켜 도시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2년의 전년 대비 인구증가율이 45.3%에 달한 것을 보면 충남도청 이전의 파급효과를 실감할 수 있다.6) 도청 이전으로 대전의 서부가 주택지로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고층건물이 도청 주변에 군집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역-도청 축을 중심으로 은행동, 원동, 정동, 중동, 대흥동의 도심부가 형성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도심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며 1953년 휴전 이후 10여년 동안에 복구되었다. 그 후, 1960년대를 전후로 구획정리 사업이 시행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