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진 희곡<맹진사댁 경사>에 관하여

등록일 2001.01.16 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머리말-창작배경
2.<맹진사댁 경사>의 대립구조와 그 의미
3.<맹진사댁 경사>의 의의와 한계

본문내용

일제 말엽이라 할 1940년대 상반기는 문화예술의 암흑시대였다. 그것은 일제의 군국주의가 기세를 올리면서 대동아 전쟁을 전개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위 국민예술이라 하여 모든 문학·예술을 어용화하였고, 그에 따라 많은 시인·작가들인 친일문학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특히 37년에 부임한 조선총독 南次郞과 그의 뒤를 이어받은 小磯의 극렬한 통치가 어용예술을 가속화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의 작가들은 친일문학으로 돌아섰거나 저항문학으로 대처했거나 아니면 소재 자체를 현실에서 벗어나 외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층 중에서도 특히 現實離反의 소재선택이 후에 주목을 끌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소재의 폭을 확대한 데다가 개화기 이후에 단절된 전통에다가 맥을 대었기 때문이다. 즉 그 시기의 작가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역사에 눈을 돌려 민속에 소재원천을 두기도 했고, 또는 향토성 짙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 일제 말엽에 <배뱅이굿>이라는 창작 시나리오로 데뷔한 吳泳鎭은 내내 그러한 입장을 고수한 극작가로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맹진사댁 경사>는 이러한 배경하에서 탄생했다. <맹진사댁 경사>는 원래 일제 말의 친일 문학 잡지인 『국민문학』에 일문(日文)으로 발표된 시나리오였다. 그의 최초의 시나리오 <배뱅이굿>의 영화화에 실패한 채 1942년 일문으로 『국민문학』에 발표하고, 여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계속하여 <맹진사댁 경사>를 역시 일문으로 발표하게 된다. 유민영이 "그가 자전적 글에서 밝힌 것처럼 일제말 군국주의 체제하에서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는 데다가 전통에 대한 반성과 확대로 쓴 것"이라고 지적했듯이 당시 오영진은 "朝鮮에 渤然히 일어난 국민문학의 운동도 새 이념을 지향함과 동시에 우리들이 가지는 전통적인 것, 체험적인 것에 대한 깊은 반성과 銳利한 洞察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뒷받침됨으로써 국민문학은 비로소 정상으로 발전함과 같이 우리의 주변을 확대해 가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여기에서 국민문학의 정상적 발전이라 함은 새 이념의 지향과 전통의 중시 및 활용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국민문학의 진흥을 위한 그의 민족주의 사상이 창작의 출발점이 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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