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와 한일관계

등록일 2000.11.13 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들어가며
2.국교 회복과 교린체제의 부활
(1)강화교섭과 조선의 대일정책
(2)회답겸쇄환사의 파견
(3)기유약조의 체결과 성격
(4)중화적 교린체제의 부활
(5)회답겸쇄환사에서 통신사로
3.통신 통상의 나라로서의 조선
(1)통신사의 왕래와 왜관무역
4.역지빙례 - 흐려진 교린정신
(1)쓰시마에서의 역지빙례
(2)흐려진 교린정신
5.교린체제의 종말
6.마치며

본문내용

조선통신사라 하면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일본 바쿠후 쇼군(幕府 將軍)에게 파견하였던 조선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뜻한다. 이러한 내용에 따르자면,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되었던 조선의 사절은 1607년에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로서 정사 여우길(呂祐吉), 부사 경섬(慶暹), 종사관 정호관(丁好寬)을 삼사로 하는 일행 467명의 파견을 효시로 하여, 1617, 1624년의 3회와, 사절의 명칭을 통신사로 바꾸고 1636, 1643, 1655, 1682, 1711, 1719, 1748, 1764, 1811년의 9회를 합쳐 12회가 된다는 일반적인 견해에 이르게 된다.
익히 알고 있듯이,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는 그 기원이 근대는 물론 고대에까지 이어진다. 여기서는 이러한 한일간의 교류를 조선시대, 특히 임진왜란 후 양국의 국교 회복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통신사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사절 파견에 한정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交隣體制로 특징 지워지는 당시의 양국간 외교관계와 그 이면에 대한 고찰, 그리고 통신사라는 명칭을 앞서 언급한 조선 후기 파견된 12회의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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