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의 업적
- 최초 등록일
- 2000.11.11
- 최종 저작일
- 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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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본문내용
1. 태조(太祖) 1335∼1408
성은 이(李), 초휘는 성계(成桂), 휘는 단(旦), 초자는 중결(仲潔), 자는 군진(君晉), 호는 송헌(松軒), 시호는 강헌(康獻), 본관은 전주(全州),
자춘(子春)의 둘째 아들, 영흥(永興) 출생. 사술(射術)에 뛰어나 1356년 (공민왕 5) 등용되어 61년 홍건적(紅巾賊)을 방어,
62년 홍건적에게 유린된 도성(都城)을 탈환하고 적을 대파시켰으며,
63년 원나라가 침입하자, 동북면 병마사(兵馬使)가 되어
덕산동(德山桐)에서 대파시키고, 70년 원나라 동령부(東寧府)를 원정하여 공을 세웠으며 남해일대에 출몰하는 왜적을 여러 차례 토벌하여 위명(威名)을 떨쳤다.
안으로는 최영(崔瑩)과 협력하여 이인임(李仁任) 일당의
전횡을 제거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우왕(禑王) 때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가 되어 요동(遼東)을 정벌하러 갔다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하여 반대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잡아 창왕(昌王)을 영립(迎立) 하였다가 다시 공양왕(恭讓王)을 내세웠다.
삼군도총제사가 되어 조준 등과 결탁하여 사전(私田)을 개혁하고
특권층의 세력을 좌절시키는 한편 자기들의 신흥세력의 기반을 굳게 하였다.
고려에 충성을 바치는 주동 인물 정몽주(鄭夢周) 등이 제거되자 정도전(鄭道傳), 조준 등의 영립으로 92년 수창궁에서 선위(禪位)의 형식으로 왕위에 올라 개국하였으며, 처음에는 민심의 동요를 염려하여 국호는 그대로 고려로 두었으나, 93년 2월 15일 조선(朝鮮)이라 고쳤다.
태조는 즉위 후 삼대정책(三大政策)을 내세워 건국 이념으로 삼아 조선왕조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는데 정치적으로는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삼아 국호 및 왕위의 승인을 받아 양국의 친선을 도모하는 사대정책(事大政策)을 썼고, 문화적으
로는 숭유배불(崇儒排佛)주의로 여말의 부패한 불교를 배척하고 유고를 건국 이념으로 세웠으며, 경제적으로는 농본민생주의(農本民生主義)로 농업을 장려하고 전지(田地)를 개혁하여 농본주의에 의한 신분 사회 제도를 확립하였다.
아울러 구세력의 뿌리를 뽑기위하여 왕씨(王氏) 일족과 구신(舊臣)들을 없앴으며, 왕씨의 본거지인 개경(開京)을 버리고 한양(漢陽)으로 천도(遷都)하여 도성을 신축하는 등으로 국가의 새로운 면목을 갖추게 했으며
논공행상(論功行賞)으로 창업에 공을 세운 이에게 개국공신의 호를 주고
전지와 노비, 왕권을 튼튼히 하였으며 관제(官制)를 비롯한 국가의 시설을 정비하고 "경제육전(經濟六典)"을 찬집(纂輯)케 하여 반포하는 등
여러 가지 정책에 힘썼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