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똑같은 사건 다른 입장

등록일 2000.11.06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똑같은 사건 다른 입장

들어가기

◈ ‘4.19 의거’에서 ‘4.19 혁명’으로
◈ 10.26 사태? 거사?

◈ ‘5.18폭동’이 ‘5.18민주화운동’으로




본문내용

◈ ‘4.19 의거’에서 ‘4.19 혁명’으로

우리 나라 역사상 민중이 정권을 타도하는데 최초로 성공한 것이 바로 1960년에 일어난 4.19 혁명이다. 이 4.19 혁명은 3.15 부정선거로부터 발화되었다. 장면 박사가 유세를 하기로 되어 있는 2월 28일, 이날은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등교령이 내려졌다. 이는 민주당의 선거 연설을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살리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특히 4월 18일 고려대생 3천 여명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데모를 한 후 귀교 길에 정치깡패의 습격을 받아 수십 명이 부상하는 사태발생은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이날의 고대생 시위는 부정선거에서 독재타도로 구호를 바꾸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튿날인 4월 19일 대학생들의 총궐기의 계기가 되었다.
‘피의 화요일’로 불린 4월 19일 고교·대학생을 비롯, 10만 여명의 서울시민이 시위에 참가했으며, 시위대의 일부가 정부기관지 서울신문사와 반공회관·경찰서 등에 불을 지르고 부정선거를 규탄했다. 이날 경찰은 무차별 발포를 했으며, 이로 인해 서울에서만 104명, 부산에서 19명, 광주에서 8명 등 전국적으로 186명이 사망하고 6,026명이 부상당했다.

정부는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를 하기 시작한 직후 서울 등 주요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군대는 유혈사태를 방지하고 파괴방지에 전념할 뿐,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내각이 4월 21일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22일 이기붕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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