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정치와 탕평론의 대두

등록일 2000.11.05 한글 (hwp) | 20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붕당정치와 탕평론의 대두>>
Ⅰ. 서언

Ⅱ. 붕당 정치
1. 붕당의 형성 배경
2. 붕당 정치와 서원과의 연관성

Ⅲ. 탕평책
1. 탕평책의 실시 배경
2. 영ㆍ정조대 군주권 강화

결론

본문내용

Ⅰ. 서언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반에 걸쳐서 상호 유기적 연결을 가진 일련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 후기의 정치는 탕평론 및 세도정치의 전개라는 특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물론 18세기 탕평론이 제시된 데에는 일정한 배경이 있었고, 영조대에 전개된 수론탕평론의 입장과 정조대에 시행되었던 준론탕평론(의리의 변발을 보다 중요시하지만, 붕당의 타파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긍정하는 견해이다.)은 각기 상이한 특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이 양자는 탕평론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상호 합치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현실정치를 이끈 통치이론이었다.
한편 개항 이전 19세기의 정치사에서는 세도정치가 전개되고 있었다. 세도정치는 왕권강화론의 일부로 제시되었던 탕평론에 맞서 소수 집권가문의 정치적 권리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이론이었으며, 이는 탕평 정국의 출현 및 지속에 대한 집권 귀족층의 반작용에 의해서 추진된 것이었다.
탕평을 표방하는 정국운영론은 이미 숙종 말년부터 제기된 바 있었다. 그러나 이 탕평론은 영조 5년(1729) 이후에 이르러 실제 정치운영의 원리로 작용되었다. 환국 정치의 극심한 페허를 체험한 당시의 지배층 일부에서는 현실 정치에서 최대의 현안이 붕당의 타파에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정치집단을 당시에는 온건한 주장을 펴는 정파라는 뜻에서 수론이라고 호칭되었다. 반면에 사림의 정치원칙인 각 붕당의 의리 자체가 붕당 타파보다도 더욱 중요하다고 파단하는 집단도 있었다. 이들은 완론에 대칭되는 준엄한 입장을 펴는 정파라 하여 준론으로 지칭되고 있었다.
그런데 영조 연간에는 붕당의 타파와 당론의 제거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고 판단되었다. 여기에서 영조는 각 당의 의리론을 당론으로 규정하여 배격하고, 송론 내지는 사론에 의해 좌우되던 기존의 정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영조는 국왕의 은혜인 군은과 관료 임면권인 용사권을 강조하며, 각 당파에서 제시하는 정론의 시비를 가리지 않고 어느 당파든간에 온건하고 타협적인 인물들을 등용하여 군주권을 강화시키려 했다. 여기에서 영조는 완론 중심의 탕평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영조는 남인 학자 계열의 고학을 상당 부분 수용하여 조례에 기초한 정책을 구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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