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辭 漢譯歌의 現況과 漢譯樣相

등록일 2000.11.04 | 최종수정일 2015.06.10 한글 (hwp) | 24페이지 | 가격 400원

목차

Ⅰ. 序 論
Ⅱ. 歌辭 漢譯歌의 現況
Ⅲ. 作品別 漢譯樣相
1. < 仰亭歌>의 漢譯
2. 松江歌辭의 漢譯
3. 鄭勳歌辭의 漢譯
4. <金剛中庸圖歌>의 漢譯
5. <農家月令歌>의 漢譯
6. <春眠曲>과 <處士歌>의 漢譯
7. <還山別曲>의 漢譯
Ⅳ. 結 論

본문내용

Ⅰ. 序 論

漢四郡시대를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한문이 전래됨으로써 우리는 문자생활을 영위하게 되었고 기록문학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아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괴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전개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우리말 노래와 한시 사이의 거리를 좁혀 조화시키려는 노력도 병행되었다. 신라때에는 鄕札體를 개발하여 향가문학을 창출하였고 고려때에는 均如大師의 <普賢十種願王歌>를 崔行歸가 漢詩 偈頌으로 번역하였으며 李濟賢과 閔思平은 小樂府를 짓게 되었다. 그리고 고려말엽 懶翁和尙의 <僧元歌>가 吏讀體로 전해지게 되었다. 향찰체로 향가를 짓고 이두체로 <승원가>를 기록하게 된 것은 우리말 노래와 표기수단인 漢字와의 불일치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고 <보현십종원왕가>를 비롯하여 향가를 한역하고 소악부를 지은 것은 우리 노래와 한시를 조화시켜 상호보완코자 노력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는 하였으나 상층문화 담당자인 사대부들은 漢字을 진정한 文字로 인식함으로써 國文은 문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소위 二重文字 시대, 二重言語 시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중인 가객층이나 민간에서는 주로 우리말 노래를 부르고 간혹 이를 국문자로 기록하기도 하였으나 양반사대부층은 漢詩를 본령으로 삼고 餘技로 우리말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따라서 노래문학[歌文學]과 漢詩문학[詩文學]이 독립적인 갈래를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창작, 향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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