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와 성년식

등록일 2000.11.01 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화랑도의 연원으로부터 조직체계, 설치목적과 그 특징들, 의의 그리고 세속오계와 성년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고찰해 본다.

목차

1. 화랑도의 연원
2.화랑도의 조직체계와 설치목적
3.화랑도의 성격(특징)
4.화랑도의 의의
5.세속오계
6.성년식(成年式)

본문내용

화랑도가 언제부터 신라에 있어서 국가 사회 중흥의 대도(大道)로 체계화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문헌의 불비(不備)로 인해 분명한 추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선 화랑도의 설치에 대한 직접적인 기사를 찾아보면 「삼국사기」진흥왕 37년(576) 조 봄에 처음으로 원화(源花)를 받들었다. 이보다 앞서 군신이 인재를 찾기가 힘든 것을 염려한 생각 끝에 무리를 모아 함께 교유(交遊)하도록 하고, 그 행의(行義)를 살펴 등용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우선 미녀 2명을 뽑았는데,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이었다. 두 여자는 3백여 명의 무리를 모았는데, 서로 질투 끝에 싸우기 시작했다. 준정이 먼저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취하도록 술을 강권한 다음 끌어다 강물에 던져 죽였다. 그 일이 발각되어 준정은 곧 복주(伏誅)되고, 그 무리는 해산되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부터는 미모의 남자를 택하여 치장시킨 다음, 화랑이라 부르고 받들게 하자, 다시 무리가 모여들게 되었다. 이 때부터 화랑의 무리는 도의(道義)로써 몸과 마음을 연마하고 가악(歌樂)으로써 즐기며 산수(山水)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그들은 안 가는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화랑도로서 사람의 정사(正邪)를 분별하고 선한 사람을 가려 조정에 천거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삼국유사」에서 진흥왕 때의 일을 대왕의 명을 내려 원화(源花)를 폐지하기 여러 해 되더니 다시 우리 나라를 중흥하자면 반드시 풍월(風月)의 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영을 내려서 양가(良家_의 남자 가운데 덕행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 화랑이라고 바꾸어 부르게 하고 설원랑(薛原郞)을 국선(國仙)으로 삼아 받들게 하였다. 이로써 화랑국선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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