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과학기술유산

등록일 2000.10.28 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300원

목차

1. 옥루
2. 측우기
3. 첨성대
4.대중여지도
5.거북선
6.거중기
7.앙부일구
8.자격루


본문내용

물시계는 해시계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시계이다. 특히 해가 뜨지 않는 날이나 밤주에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물시계는 밤중의 시간을 알려주는 공식적인 시계로 정착해서 누각 또는 경루로 불렸다. 대부분의 물시계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양의 규칙성을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한다. 그러나 물통에서 떨어지는 물의 규칙성은 물의 압력의 차이에 의해서 오차가 발생한다. 이 오차를 줄이기 위해 물통의 수를 조절했는데 보통은 3∼5개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물시계를 제작·사용한 것은 「삼국사기」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즉 누각이라는 물시계가 신라에서 718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 확인된다. 신라는 물시계를 전담하는 부서인 누각전을 두기도 했다. 이후 고려시대에도 이 제도가 이어졌을 것이나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398년(태종 7년)에 경루라는 국가표준 물시계가 제작되었다. 이 물시계로 시간을 측정해서 종을 쳐서 밤 시간을 알렸다. 이 종을 치던 종루가 있던 곳이 바로 종로이다. 세종 때에는 매우 정교한 자동시보장치가 붙은 물시계가 제작되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자격루라고 불린 자동물시계는 장영실 등이 2여년의 노력 끝에 세종 15년(1434) 6월에 완성해 경복궁 남쪽에 세워진 보루각에 설치되었다. 이 자격루는 그 해 7월 1일을 기하여 공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조선왕조의 새로운 표준시계의 하나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자격루는 창설된 지 21년 만인 단종 3년(1455) 2월에 자동시보장치의 사용이 중지되고 말았다. 장영실이 죽어 고장난 자동장치를 고칠 수 없었던 게 주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이후 여러 번의 보수가 시도되었짐나 제대로 재작동하게 된 것은 자격루가 창설된 지 백년여 만인 중종 31년(1536) 6월에 이르러서 였다. 이 때의 자격루의 유품들이 현재 덕수궁에 보존되어 있는 물시계의 그것이다. 이 자격루는 몇 차례의 수리, 개조를 거쳐 조선말까지 사용되었다. 특히 효종 때에는 효종 4년부터 종래의 하루 100각제의 시제가 96각의 시제로 되면서 자격장치가 100각제 때 맞는 것이어서 소용없게 되자 제거하고 말았다. 결국 자격루에는 자동시보장치가 사라졌고 이후에는 사람이 수동으로 시간을 알리게 되었다.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