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武則天)

등록일 2000.10.07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900원

목차

•무측천
•평가 및 견해
참고문헌:

본문내용

•무측천
무칙천은 당의 2대 천자인 태종 때 지방장관을 역임한 후 공부상서가 된 무사확(무사확)의 딸로서, 이름은 조1), 자는 미랑(미낭)이라 하였다. 무측천이 14살 되었을 때, 태종은 그녀의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재인”2)-후궁의 품계-으로서 후궁에 넣었다. 하지만 태종은 무칙천의 성격 때문에 총애를 하지 않았다. 그 예로 “황궁에 들어간 후, 무측천은 일반의 여인과는 다른 강렬한 성격을 보였다. 태종에게는 사자총이라는 준마가 있었는데, 성질이 난폭해서 길들이기 힘들었다. 이에 무측천은 이 태종에게 자신있게 말한바, 그녀는 말을 길들일 수 있다고 하였다. 태종이 그녀에게 어떤 묘방이 있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하길 ‘나는 먼저 쇠채찍으로 말을 일으켜서 굴복하지 않으면, 또 쇠로 때리고 치겠다. 그래도 굴복치 않으면, 비수로 말의 목구멍을 자르겠다’ 이런 말이 소녀의 입에서 나오자, 태종은 몹시 놀랐다. 그러나 태종은 그녀의 성품을 좋아하지 않아, 무측천이 14세부터 26세까지, 줄곧 태종의 후궁중 품위가 비교적 낮은 ‘재인’이었고, 승진도 없었으며, 출산 또한 없었다. 그녀가 이 기간에는 그리 크게 총애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고 볼수 있다.3)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무재인은 다른 궁녀들과 마찬가지로 비구니들이 있는 감업사로 들어가 선제의 명복을 빌었다. 3년 후, 무재인은 고종에게 불려가 다시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선제의 후궁이 다시 그 아들인 천자의 후궁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오늘날이라면 말도 안 되는 불륜이지만, 당시 북방 유목민족들 사이에서는 이런 관습이 있어서, 당나라 왕실에는 북방 유목민족의 피가 섞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무재인의 입궁을 고종에게 권한 것은 황후인 왕씨였다. 고종이 오로지 숙비(4부인중의 하나)인 소씨만을 총애하여, 무재인을 후궁으로 불러들여 고종의 마음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때 무재인의 나이 29살이었고, 왕황후의 뜻대로 고종은 점차 소씨를 멀리하게 되었고,

참고 자료

중국사 재미있게 들여다보기” 력사の미연구회 편, 이재정 역
“중국고대걸출제왕” 북경과학기술출판사 임효평 저
“세상을 뒤흔든 악녀들” 김향 저 가람신서
“중국대륙을 움직인 사람들” 주성천 편저 고려원
“중국력대황제” 이령구, 이현심 저, 제남출판사
"이야기 중국사(중국 6천년의 야망 5) 진순신 저, 시대정신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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