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문화

등록일 2000.10.05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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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문화

본문내용

신라는 낙동강 동편의 경상남북도 곳곳에 위치하고 있던 진한 12국 중의 하나인 사로부족이
주변소국을 정복하여 왕권 국가로 발전한 나라이다. 사로부족이 국가의 체계를 갖추어 나가
는 시기는 B.C. 1세기 후반경 부터인데, 한나라의 문물이 활발하게 내려오던 때이다. 그래서
사로부족은 한의 철제문화를 수용함으로서 A.D. 2세기 초에는 그 철제무기의 힘을 바탕으로
북으로 의창, 서로 영천, 남으로 울산까지의 땅을 차지하였고, 다시 3세기에는 땅을 더욱 넓
혀 낙동강 동안을 영역 안에 두게 된다. 당시 만들어 진 고분을 보면 철제무기와 갑옷이 출
토되어 당시 전투가 기마전 중심의 대규모 전투였음을 짐작케 한다. 4세기에는 내물마립간의
김씨 세습체제가 확립되고, 밖으로 정복사업을 펼쳐 왕권국가가 되는 시기로서 이때 중국의
사서에 신라라는 나라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나 신라는 독자적인 영역국가를 이끌어가기에는
여러모로 미숙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왜병의 침입에 고구려의 도움을 받은적도 있으며, 주
변소국에 가끔 정벌군을 보내나 점령지를 통치할 만한 힘이 없어 관리를 파견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러한 신라가 고대 국가로의 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은 지증왕, 법흥왕때에 이르러서
이다. 지증왕때에는 중국식왕호를 사용하여 정치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우산국을 정복하여 대
외발전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어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
용하여 왕권의 전제화와 국가의 통일을 위한 사상적 뒷받침을 마련하고, 진흥왕때에는 한강
상류지역을 점령하고 가야를 모두 합병하였다. 한강유역의 확보는 중국과 직접 통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으며 가야국의 정벌은 기름진 낙동강유역을 완전히 차지함으로써 삼국을 통일
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함락하여 반도를 통일 하였
다. 그리고 다시 반도를 노리는 당을 몰아 냄으로써 한민족으로 이루어진 통일된 국가 체제
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신라의 유물들을 나는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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