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과 철학

등록일 2000.09.18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400원

목차

1. 철학
2. 과학

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과 철학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의 생애를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고대 그리스 최대의 철학자로 북부 그리스의 트라키아지방에 있던 스타기라(Stagira)마을의 명문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철학은 물리학과 기상학으로부터 생물학과 심리학에 이르는 많은 분야에 걸쳐서 근 2,000년 동안 인간의 사고를 지배했다.
그의 부친은 마케도니아의 궁중의사였는데 그가 어릴 적부터 생물학과 과학의 분류에 흥미를 가졌던 이유 중에는 부친의 영향도 컸으리라고 짐작된다. 일찍이 양친을 여읜 그는 기원전 367년 Platon이 세운 학교 Academy에 입학했다. 그는 17세부터 플라톤의 아카데케이아에서 공부하기 시작해서 기원전 347년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20년간 아테네에 머물렀다. 플라톤은 그를 `학원의 두뇌`라고 불렀으며, 공부벌레였으므로 `부지런한 독서가`라는 별명도 붙었다. 플라톤이 죽은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를 떠났다. 아테네를 떠난 동기는 플라톤의 후계자가 되지 못한 불만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으나 이 해석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외지인이었으므로 처음부터 학파의 우두머리가 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리포스 왕이 BC 348년 그리스 도시국가 올린토스를 노략질한 뒤에 일어난 아테네의 반(反)마케도니아 감정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 그럴 듯하다. 플라톤이 죽은 후에는 아테네를 떠나 에게해, 소아시아와 그 지역의 해안지방 등 여러 그리스왕국을 수년동안 여행하면서 현장작업을 통해 생물학, 특히 해양동물학 분야에서 많은 경험적 자료를 얻었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와 기원전 342년 Alexander 대왕이 된 어린 왕자의 개인교수로 일했다. 그 후 그가 아테네에 세운 Lyceun이라는 학교는 많은 학생에게 인기가 높았으며, 수학과 정치철학을 위주로 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는 달리 생물학과 자연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그의 제지였던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자 각처로부터 많은 자료를 얻게 됨으로써 생물학 등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뒤에는 사제가 서로 멀어져 있었다. 알렉산더가 사망하자 아테네인들 사이에 일어나 반 마케도니아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그도 고소되었으므로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에우보이아의 Chalcis에 은신, 일 년 뒤에 장티푸스에 걸려 62세로 일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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