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홍경래의 난

등록일 2000.09.08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배경〕
〔경과〕
〔평가〕

본문내용

조선 후기 홍경래(洪景來)․우군칙(禹君則)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란. 1811년(순조 11) 12월부터 12년 4월까지 5개월간에 걸쳐 일어난 조선 최대의 민란이다.

〔배경〕
이 민란은 당시 조선의 봉건적 사회상이 주요 원인이었다. 조선시대 주요 산업인 농업은 17~18세기에 들어 이앙법․이모작 등 농업기술의 향상과 토지겸병으로 광작운동(廣作運動)이 일어나 경영형 부농층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경영형 부농층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 농민들의 농업 규모는 더욱 영세화되면서 영세빈농․전호(佃戶) 등으로 전락하였다. 토지에서 이탈한 농민들은 유리민화(遊離民化)되어 일부는 임금노동자가 되고, 일부는 도시빈민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상공업에서는 상품경제의 발달로 수공업자가 전업화(專業化)하고, 사상인(私商人)의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대외무역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신분체제에서는 하층민의 신분상승으로 인한 양반 수의 증가, 잔반(殘班)의 존재, 하층민 감소 등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정치적으로는 치열하던 당쟁이 끝나고 노론에 의한 안동 김씨(安東 金氏) 척족의 일단전제가 성립됨으로써 재정의 근간을 이루는 삼정(三政) 문란은 농민층 분해를 더욱 촉진시켰고, 특권상인과 지방 사상인간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경과〕
이러한 현상들 속에서 홍경래․우군직․김사용(金士用)․김창시(金昌始) 등은 몰락양반․이서층(吏胥層) 등이 《정감록(鄭鑑錄)》이라는 비기를 이념으로 농민층 분해과정에서 새로 성장한 부농․서민지주층과 사상인 층의 물력(物力) 및 조직력을 결합하여 반란이라는 직접적 행동을 드러내었다. 특히 홍경래가 살았던 서북지방은 중앙과 연결된 수령들의 구조적 수탈과 함께 서북민에 대한 조정의 차별정책이 그들에게 공동의 피해의식을 심어주게 되어 18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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