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서정주

등록일 1999.02.09 한글 (hwp) | 63페이지 | 무료

본문내용

서정주 徐廷柱 1915 - 시인. 호는 미당(未堂).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출생/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漢學) 수업. 전북 부안군 졸포보통학교 수료.서울 중앙고보 및 전북 고창고보 중퇴.방랑생활. 1931년 고승 박한영 대종사 문하에 입산,서울 개운사 대원암의 중앙 불교 전문강원에 입학, 그 뒤 중안 불교전문학교에서 수업.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었다. 시동인지 <시인부락>편집 겸 발행인,동인은 김돌이.이용휘.오장환. 등이 었다. 1938년 화투패를 떼 보고 선을 본 방옥숙 여사와 결혼하고 첫 시집 '화사'를 남만서고에서 출간, 그뒤로 일제 식민지 시대의 황막한 강산을 떠돌고 서울의 여기저기에 기류하다가 만주로 방랑,안동안 간도에서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있었고 용정에도 가 있었다. 일제 말기를 고향과 서울에서 전전하다가 해방을 맞았다.1946년 시집 '귀촉도'가 선문사에서 출간되어 시단에 나온 직후부터 놀라운 반응을 일으킨 그의 시가 이 시집에 이르러 정착되었다. 동아대학 교수,<동아일보>사회부장 .문화부장 등에 취임한 후 정부 수립과 함께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을 약 1년간 역임하면서 한국문학가협회 시부위원장에 피임되었다. 1950년 6.25 동란이 발발하자 조지훈.이한직 들과 한강을 기적적으로 건너 대전.대구 등지로 피난하였다. 전쟁과 함께 그는 극심한 정신분열증세를 일으켜 전시임시문인단체인 문총구국대 문우들의 보살핌으로 대구의 병원과 부산의 한거에서 요양하다가 9.28 수복 후 서울로 돌아왔다. 1.4 후퇴와 함께 가족과 더불어 피난열차,마차 따위를 타고 전주로 내려갔으며 후배들의 알선으로 생활 터전이 마련되어, 그의 중견시 이후에 가장 중요한 시적 테마가 되었던 '신라체험'을 <삼국사기><삼국유사>를 통해 영감이 확대된 경지에 정착시켰다. 또 전주시대는 자살미수사건도 생긴 반면 동양사상과의 만남에 의해서 1936년 초기에 강렬하게 보인 보들레에르풍의 마성이 승화되었다. 그의 전주시대 그리고 광주시대에 이르러 이른바 대가시 <상리과원><무등을 보며>등 명작을 산출했는데,이런 서정주문학의 예술적인 승리는 그의 정신분열증세와 함께 진행되었다. 전주의 전시연합대학 강사,전주고교 교사,조선대학 부교수 등으로 전전하다가 환도와 더불어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왔다. 예술원 회원,서라벌 예술대학 교수,동국대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1960년 시집<신라초>를 출간했다.그의 동양정신은 전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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